간판도시

박상희 – <간판도시>

작가는 도시의 풍경을 촉각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시트지라는 재료로 오랫동안 작업해왔다. 이는 회화의 원근과 평면성을 화면에 그리면서 동시에 디지털 사회의 파편화된 조각처럼 기하학적 무늬를 만들어 낸다. 제작 과정은 캔버스 위에 시트지를 붙인 후 색을 덮고 다시 칼로 오려내는 방식인데, 여기서 쓰이는 시트지의 색감 조각들은 평면성과 오려내기 방식이 결합되어 입체(부조)로써 강조된다. 표현에 있어서는 회화의 고전적인 재현 방식을 사용하고 있지만 시트지가 오려지고 다시 재조합 되면서 풍경의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놓으며 색다른 회화의 접근을 경험하게 한다.

 

그간 박상희는 도시의 불 켜진 야경 안에 드러나는 욕망과 끊임없이 노동하는 현대 사회의 불면의 밤을 담아낸 작품을 주로 선보였다. 이번 전시는 근작과 더불어 초창기의 작업을 다시금 선보이고자 한다. 한국적 소재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초기 작업에서 평범한 듯 남다른 시선으로 일상 풍경을 담아냈다. 대형마트 진열대 위 상품패키지가 그중 하나이다. 대량생산과 소비의 맥락으로 이어진 현실적이고 인위적인 모습들은 서로 주의를 끌고 싶은 열망에 담겨 형형색색 패키지 라벨에 쏟아내고 있는데, 세련된 이미지는 아니지만 친근한 듯 인위적인 이 모습이 그의 시선을 끌었다. 진열대 위 상품 패키지에서 발견되는 발랄함과 한글 배치를 친근하면서도 재미있는 한 컷의 만화 같은 표정으로 담아냈다.

 

레이블 갤러리는 이번 전시에서 한국적 팝으로 보일 수 있는 공산품 라벨들(글자, 간판, 과자 봉지 등) 이 작품의 주 소재로 사용된 작업들에 집중했다. 작가가 오랜 시간 연구한 시트지라는 소재와 기법으로 재현된 키치(kitsch) 적인 조형은 2000년대 전후의 복고풍 이미지로 드러났다. 키치라는 단어가 단순히 저급하거나 대량 생산된 싸구려 상품을 이르는 말에서 나아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 삶의 방식과 태도를 가리키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확장되었듯, 현란해 보이는 공산품 라벨들은 한국 사회의 역사이자 우리 소비문화의 거울임을 환기시켜 줄 것이다.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