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소미(갤러리스케이프 큐레이터)
거리 곳곳을 뒤덮으며 도시를 장악한 간판은 오늘날 한국의 일상적 풍경을 말할 때 일순위로 언급이 되곤 한다. 이질적인 문화를 경험한 외국인들에게는 잊지 못할 한국적 인상이 되어 버린 간판의 모습은 급속도로 빠른 경제적 성장을 이룩하며 자본주의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한국 사회의 욕망을 반영하는 증거이다. 이러한 온갖 기호(sign)가 난무하는 일상적 풍경에 관심을 가진 박상희는 간판(sign)의 재료인 시트지를 캔버스 위에 오려 붙여 회화화하는 것으로 도시 속 간판을 통한 한국 사회의 일면을 지속적으로 관찰해왔다. 그의 최근작인 ‘야경’ 작업은 기존의 간판 작업보다도 정교하게 도시 구조의 기호들을 밝혀내고 있다.
어둠 속 기호로서 인공 조명
야경 작업은 작가가 지금껏 시트지 기법으로 탐구해왔던 ‘간판’, 즉 도시의 각종 싸인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작가가 밝혔듯이, ‘간판이 인공조명을 통해 비춰졌을 때 더욱 부각되는 효과에 대한 흥미’는 그의 시선을 어둠 속에서 강조되어지는 싸인들로 이동시켰다. 밤의 무대에서 간판은 더 이상 낮과 같은 균일하고 평등한 조도에서 각기의 이미지와 텍스트를 자랑하지 못한다. 어둠 속에서 간판은 형식적 특징보다는 인공 조명의 조도에 의해 싸인의 힘이 차별화되어 진다. 야경에서의 주인공은 간판의 디자인, 색감, 텍스트의 크기보다는 이를 밝히는 인공 조명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대도시일수록 보다 넓고 밝게 분포하는 인공 조명의 풍경을 보며 작가는 일종의 자본에 의해 규약된 빛의 논리를 발견하게 된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이는 ‘현대 사회 속에서 고도로 자본화된 테크놀로지의 규약’과 관계된 것이다. 이로써 작가의 야경 작업은 간판 풍경에서 살펴본 현대 사회의 단면들이 보다 정교하게 규약적으로 소비되어지는 현상에 주목하여 펼쳐진다. 그가 간판 풍경에서 주목한 거리의 싸인들과 상점의 모습들이 인공 조명 아래에서 드러나는 도시 이미지로 대체되는 것이다. 야경에서 자본주의의 상품 이미지는 보다 스텍터클한 볼거리로서 도시 자체를 점령한다. 현대 도시의 풍경을 기호화하는 야경의 모습은 작가가 소재로 삼은 세 도시의 상관 관계를 통해 분석해 볼 수 있다.
조명의 온기 속에서 산보한 세 도시: 인천, 홍콩, 요코하마
박상희의 작업에서 야경을 다룬 풍경은 2007년부터 등장한다. 초기에는 작가의 삶의 터전인 인천의 일상적 장면부터 보여 진다. 누구나 하루에 한번쯤은 일상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도시 한 켠의 야경을 소시민의 시선으로 담담하게 포착한 작품들이다. 지극히 한국적 도시 풍경이었던 간판이 즐비한 야경 작품은 작가가 인천, 홍콩, 요코하마 이 세 도시를 동시에 접근하면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된다. 위의 도시들은 100여 년 전에 서구에 의해 개항을 하여 신문물을 받아들인 항구 도시로 고유의 지역성과 서구의 문화가 혼재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바다와 육지를 동시에 둔 항구 도시의 지리적 입지는 일찍이 다양한 문화가 쉽게 오고 가면서 볼거리, 관광지로서의 도시 문화가 발달한 곳이기도 하다. 작가는 형형색색의 조명으로 치장된 도시의 야경을 관광 책자에서 여행객의 시선을 자극하는 사진처럼 아름다운 장관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시선은 한국 사회의 특징을 간판을 통해 분석했던 관첨을 바탕으로, 야경 속에서 부각되어지는 도시의 싸인들에 주목한다. 붉은 조명이 거리를 가득 메운 홍콩의 밤거리, 가로등이 은근하게 비추는 것으로 드러나는 요코하마의 근대 건축물 등 어둠 속에서 세 도시의 특징을 밝히는 것은 인공 조명이다. 거대한 맥도날드 간판이 어둠을 밝히고 네온으로 휘황찬란해진 영어 싸인들이 시선을 장악하는 홍콩의 한 거리는 대도시의 야경으로서 흔한 풍경이다. 이렇듯 세 도시를 통해 본 작가의 야경작품은 지역적 차이를 바탕으로 한 상이한 문화 풍경을 보여주기 보다는 소비문화에 의한 볼거리, 즉 물신으로서의 도시 이미지를 다루며 전개된다. 야경을 통해 드러난 어둠 속 싸인들은 현대 사회의 도시가 소비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발광하는 이미지를 분명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도시의 장막을 떠도는 빛의 자국
평등하게 분포했던 태양의 온기가 사라진 밤에 인공 조명의 지휘 하에 드러난 야경의 싸인들은 낮의 전경보다도 자극적이고 선정적으로 시각을 독점한다. 야경 을 감상하는 어느 산보객은 발광하는 빛에 의해 의미를 상실한 도시의 싸인들을 보며 아름다운 장관이라고 말할 지도 모른다. 도시 도처에서 파편적으로 터져 나오는 섬광 같은 인공 빛은 누군가에게는 시각적 맹점 상태를, 다른 누군가에게는 심장을 관통해 지나가는 심리적 충격을 선사할 것이다. 작가의 야경 작업은 외부적으로 드러난 조명 이미지보다는 도시의 이러한 내적인 발광 상태에 주목한 것이다. 그의 야경 작품에서 알 수 없는 궤적으로 도시를 부유하는 인공의 빛들은 시트지를 파내는 작가 특유의 수작업을 통해 자국으로써 도시의 표면에 새겨지게 된다. 작가가 시트지를 오려 내는 것으로 빛의 환영을 촉각적으로 난도질한 흔적은 야경의 발광 상태 뒤에 가려졌던 괴리된 정서를 환기시킨다. 도시의 도처에 새겨진 빛줄기는 반복적이고 불규칙한 흐름을 통해 완고한 표면에 드리운 환영을 꿰뚫으며 내제된 심리적 증후군을 암시케 한다.
이렇듯 박상희의 야경 작업은 어둠 속에서 드러나는 도시의 기호들을 분석함으로써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고도로 규약화되고 자본화된 욕망에 접근하고 있다. 10여년간 작가가 연마한 시트지를 떠내는 조형적 특이성은 근작인 야경 작업에서 빛을 발해 보인다. 야경 작업에서 그가 시트지를 오리고 파내는 기법은 레이어가 형성한 장막과 그 표면에서 어른거리는 인공 조명의 환영을 파괴하는 행위로서 더욱 강조되어 진다. 이러한 형식적 특징으로 인해 촉각적인 빛의 궤적으로 드러난 야경의 풍경은 발광하는 빛에 가린 공허하고 불온한 현대인의 정서를 반영해 보인다. 태도로부터 취한 형식이 다시 태도를 형성하나가는 작가의 작업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가 도시에 내제된 기호들을 새겨 오려낼 다음 지점들을 기대해본다.